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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시대' - 정우경



'도련님'의 시대. 메이지 시대의 대표작가, 나츠메 소세키의 대표작, '도련님(坊ちゃん)'을 이름으로 붙이고 나온 5권짜리 만화




단순히 메이지 시대의 대표 문학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교양을 위한 서적이라 생각 하고
가볍게 든 책이었어
.




그럴 만 했던 게, 작가는 타니구치 지로,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무척 유명한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란 말이야. 소소하고 담담하게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게
특징인 작가니까
, 그 시대의 작가들을 소소하지만 재미있게 그려내지 않을까 싶었어.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단순한 교양 만화가 아니야. 물론 이 만화는 타니구치 지로의 작품인 만큼, 이야기를 소소하게
그려내고 있어
. 하지만 그 시절이, 메이지 시대였고, 그 시대에 있어서 만큼은 작가의 그 소소한 이야기들은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울렁거리는 감동을 선사하지.




자네에게 물어볼게. 메이지 시대. 1852년부터 1912년까지의 일본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분명, 힘 없이 개항하고, 금새 그 분을 못 참고 서양에게서 그 기술과
사상을 그대로 배워와 조선을 침략하고
, 결국 병합시킨 시대. 정말로
끔찍하고 상상할 때마다 분이 떨리는 시대지
. 나도 그래. 전공자지만, 메이지 시대의 악한 면은 다이쇼와 쇼와를 지나가며 점점 더 악하게 제지할 힘도 없이 폭주했고, 그 단초를 그대로 남겨 준 메이지 시대, 조선이라는 나라를 없앤
메이지 시대는 정말 생각할 수록 싫은 시대지
.




그러면, 그 당시의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있어? 이 책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야. 그 중에서도, 가장 선진문물을 많이 받아들이고, 사상이 자유롭고, 교육을 많이 받은 그 시대의 저명한 문학가들의 눈으로 본 그들의 삶과,
당시 일본인들의 삶이지




보장할게. 단 한 줄도 메이지 시대에 대한 미화는 없어. 주역인 나츠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이시카와 다쿠보쿠, 고토쿠 슈스이는 그 시대의 철저한 피해자지만, 그와 동시에 그 시대의 협력자이기도 했기에, 그들의 눈에 비친 메이지
시대는 전혀 미화할 것도
, 그렇다고 악화시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 대신 이 작품에서 그 시대의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조선에 가지는 감정은
, 죄책감과 연민이었지




메이지 시대는 격동의 시대였어.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위한
일을 했고
, 그것은 성공했어. 일본은 더 나은 나라가 되었지. 그 가운데 나츠메 소세키와 모리 오가이가 있었어. 하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좋은 나라
, 개인이 자유롭고, 억압받지 않는 나라는
왜인지 그들이 만든 일본에서는 점점 더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
.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던 사람의 자리를 뺏어 버리고 그를 죽음에 몰아넣게 된 소세키
, 정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나라와
가문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버리게 만들면서도 단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오가이
, 언제나 정직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인정 받고 싶었지만
, 빚에 빠져서 자신의 재능을 남의 작품을 교정하는 데만 바치게
되는 다쿠보쿠
, 혁명에 끼지도 않았지만 단순히 혁명을 일으킨 이들과 같은 사상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사형대에
오르는 슈스이
.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대가 자신들의
손을 떠나 비틀려 가고
, 자신의 목을 옥죄어 가는 것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이었어. 이미 나라는 군인들과 극단적인 정치가들에게 넘어가 자신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




그렇게 그들은, 소세키의 '도련님'에 주인공, '도련님'
되어버렸어
. 시대의 사이에 껴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상처 받는, 길고양이나
다름 없는 삶
. 그 울분, 그 죄책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은 그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집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승화되어갔고, 자신들의 생명을 갉아가면서라도 나름의
속죄와 해소를 위한 작품들을 써나가지
.




이런 방황하는 도련님들의 사이에 생각보다 자주 등장하고 언급되는 이방인이 한 명 있어.
그 이름은 '안중근'. 일본인의, 일본인이 만든, 일본인에 대한 만화에 왜 우리의 그가 등장한 것일까. 작가는 안중근의 짧은 일본에서의 생활에서 이들 작가들과 스치듯 만나고, 풍문에
듣게 되며
, 말도 안 통하고, 안에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지만
, 그 또한 시대를 만든, 시대가 낳은, 피해자이면서, 협력자(일제가
아닌 조선의 역사
), 조선의 '도련님'으로써 보여주고 있어. 1909,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데에 대해서, 비난이 아닌, 그를 인정하는 나츠메 소세키와,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은 죄책감과 책임감, 연민에 빠져서 집필을 하는 동안, 자신들도 꿈꾸고 있던 시대를 바꾸는 일을 해낸, 조선의 '도련님'. 안중근에 대해서 흐릿하게나마 동경하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 전체로 보면 얼마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메이지를
대표하는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어.




조선이 일본에게 완전히 식민지화 되는 1910, 나츠메 소세키가 생사를 넘나드는 그 1910, 수많은 메이지의 작가들이 '대역사건'으로 죽어가고, 병마로 죽어가던 그
1910
. 작가는 그 1910년으로 '도련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해. 메이지 천황이 죽기까지는 아직 몇 년이 남았지만, 시대를 대표하고
고뇌하던
'도련님'들은 모두 그 시대에 의해서 힘을 잃고
사라져 버렸으니까
. 다쿠보쿠가 짧은 하이쿠(짧은 몇 구절로
이루어진 시
), 지워져 가는 조선을 어떻게 할 수 없이
슬퍼할 수 밖에 없던 것처럼
. 그렇게 아련하게 도련님의 시대는 끝이 나




메이지 시대, 그 일본이 아닌.
시대의 주인공이었지만 그 시절의 풍파
, 잔혹한 역사로 인해 스러져 가던 일본인들, 그리고 한 명의 조선인. '도련님'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발버둥이 그 이야기만으로는 무력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도련님'들의 발버둥이 얼마나 역사를 바꾸어갔는지 알고 있어. 그렇기에 이
작품은
'도련님'들이 슬퍼하는 모습에 슬퍼하면서도, 그들을 읽는 동안 계속 위로할 수 있지.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결국 이렇게 우리 앞에 와 있으니까
.




책 속 명대사라도 하나 쓰고 싶고,
연출에 대해서도 더 말하고 싶지만, 정말 하나 하나 문학작품에서 튀어나온 듯한-그들의 일기가 자료로 쓰였으니 문학작품이라면 훌륭한 문학작품인-
컷 한 컷 투박해 보이는 선에서 나오는 말도 안되게 세련된 영화 같은 연출은
5권의 책 전체에 계속해서
넘쳐나기 때문에
, 말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줘야만
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 씁쓸하지만 놓을 수 없는 향이 진하게 나는, 단순히 일본뿐이 아닌, 미쳐가던 시절의 사람들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
나오는 이 작품을 한 번 즐겼으면 좋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