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기반 조성을 위한 제도적 측면에서의 소고
변철환
함께일하는재단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 제도분과 위원
근래 세계경제는 “세계화”로 명명되는 초국가적 자본의 무한경쟁시대를 맞게 되면서 보다 시장지향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지배적인 모습은 진화 과정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최근에는 이로 인해 국가 간 또는 국가 내에서의 소득불평등의 증대, 세계 각지의 만성적인 고실업률, 환경의 악화, 공동체의 붕괴 등 전형적인 시장실패의 문제점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평가가 오히려 지배적이 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제 불황은 시장과 자본을 정점(頂点)으로 하는 세계금융경제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한 자각을 하기에 충분했으며, 이에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안적 경제로서 이른바 자본주의 4.0 또는 제3섹터 내지 제4섹터 경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등을 거쳐 자생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확립하였고, 또한 효율성의 추구를 최고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발생하는 빈부의 격차, 실업 등 사회문제에 대한 반성적 자각으로서 노동조합운동 및 협동조합운동 등 사회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재정립해가고 있는 데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는 사뭇 다르게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수입 또는 주입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등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축의 역사적 경험이 일천하고, 위 대안적 경제마저도 자생적으로 발아하기보다는 국가가 정책상의 필요에 의해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여 주입해가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파악해본다.
사회적경제는 본질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필요와 염원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발아하여 호혜와 연대의 원리에 의해 그 저변을 형성해온 영역이다. 현대사회가 사회경제적 정책상의 필요에 의해 이를 제도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와 삶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공제조합 등의 제도적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의 자조와 호혜의 방식과 사회적ㆍ경제적 운동은 사실 사회적경제의 한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예컨대, 계, 향약, 두레, 조합 등 고래(古來)로부터 사람들이 고단한 현실을 돌파하거나 사회경제적 기반을 강화하고자 도모했던 자조적ㆍ호혜적ㆍ연대적 활동들은 현대사회에서의 사회적경제의 원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국가와 사회의 역사적 전개에 따라 최근 국내외적으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경제 영역이 현대사회의 고용, 복지, 공동체 회복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있는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 각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정책적ㆍ제도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현재 대표적 사회적경제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단체), 마을기업 등에 대하여,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ㆍ시행하여 사회적기업을 취약계층 일자리 및 지역사회 기여 등 사회서비스의 사업량을 통해 인증하는 방식으로서 제도화하였으며,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ㆍ시행하여 협동조합에 관해 필수적으로 법인격을 갖도록 제도화하고 있으며, 1997년 생활보호법 개정을 통해 자활사업에 관해 자활지원센터가 자활후견기관으로서 국가제도로 편입되도록 제도화를 시작하였다(마을기업의 경우 현재 법제화는 되어 있지 않으며, 법제화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최근 2014년 1, 2월 국회 여야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의 법제도들이 분절화되어 있음을 극복하고, 사회적경제의 발전 기반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사회적경제 특별위원회, 사회적경제 정책협의체 등을 출범시키고, 이른바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발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는 국가가 사회적경제를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경제는 본질적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경제의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서의 보완은 우리 사회경제체제의 일대 전환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에 있어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위한 과제는 이러한 사회적경제의 법제화의 시급함보다는 우선적으로 현재 한국의 사회적경제 지형을 돌아보고, 현행 제도들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들을 분석하여 그 개선점을 찾아 정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각 제도들을 그대로 둔 채, 현재의 제도상의 문제로 인한 부의 효과(side-effects)들을 사회적경제기본법이라는 제도로서 모두 수렴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넌센스일 수 있으며, 옥상옥(屋上屋)과 같은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의 설계에 앞서 현재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이 갖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비의 방향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보충성의 원칙(the principle of subsidiary)에 입각한 국가의 보조적 역할의 태도에 기반하여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등 사회적경제의 본질에 충실한 정책 및 제도의 설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법제화된다면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명실상부한 사회적경제의 기본법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목적, 정부의 시책과 계획, 추진체계, 법제ㆍ재정상 조치 등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기타의 국민의 권리ㆍ의무에 관한 내용들은 자제하여 위 사회적 경제에 관한 각 일반법의 매개법률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가 현 정책과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경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단기적인 정책적 효과에 지나치게 주안을 둔 채, 사회적경제의 본질을 경시 내지 도외시한 제도를 설계하는 경우 자칫 사회적경제 영역이 일시적인 붐 현상으로 표류하게 될 우려가 크며, 국가적ㆍ사회적으로 목적하고자 하는 사회적경제를 통한 사회의 긍정적 변화와 발전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사회적경제를 통한 사회경제적 효과성은 그 본질로부터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법제도라는 것은 활동을 촉진하는 기능과 함께 통제를 본질적 기능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적경제 영역을 법제화하는 것은 국가적ㆍ사회적으로 긍정적 측면과 함께 자칫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우려가 공존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각 사회적경제 주체들과 관련한 본질과 정체성 그리고 법제도들의 개선사항 등이 가시화된 부분조차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사회적경제 영역을 제도화하는 것은 어느 제도보다도 숙고와 역사적ㆍ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동반되는 지난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 영역의 주체들의 본질과 정체성에 관해 사회적 함의를 우선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비로소 사회적경제를 올바르게 제도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 시기는 국가적ㆍ사회적으로 사회적경제 영역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사회적경제의 본질과 정체성 및 국가의 정책ㆍ제도와의 관계를 충실히 기초하고 정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