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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북 개혁개방 부작용 줄일 것

‘2019 서울 사회적경제 국제 컨퍼런스 : 한반도 단번도약과 사회적경제의 가능성개최

전문가들 이미 시장경제 문제점 발생자유화=자본주의 시장 암시 아님 공유해야

향후 북한사회가 개혁개방을 추진함에 있어, ‘사회적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동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적경제는 개혁개방 과정에서 나타날 불평등과 부정적 결과를 해소하면서 가장 빠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1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서울 사회적경제 국제 컨퍼런스 : 한반도 단번도약과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의 발전에 사회적경제가 역할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김영희 한국산업은행 선임연구원은 사회적경제가 태동할 조건이 갖춰졌다고 지적했다. “북한에도 사회적경제와 유사한 협동조합 즉 수산협동, 생산협동, 편의협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부정적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김 선임연구원은“1990년대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계획경제에 따른 국가공급제가 붕괴됐다”며 “시장경제 활동이 합법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양극화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지식과 기술 수준, 사업자금 보유 정도 등에 따라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실업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한 뒤 “공동체 활동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꾀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수용력이 높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조성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장도 “장마당 등을 통해 경제적 활동에 대한 자율권이 보장되고 있으며, 낮은 수준이기는 하나 재산권 보장도 실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사회적경제조직의 씨앗도 움트고 있다고 봤다. 조 원장은 “북한 헌법은 협동단체의 존재와 토지소유를 인정하고 있다”면서 “이미 경제행위의 주체로 다양한 단체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한 경제주체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상급기관과 정부의 강력한 통솔 하에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자치가 허용되는 수준”이라며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책제안 기능은 매우 약하다”고 밝혔다.

사회적경제의 파급력이 북한이 추구하는 ‘단번도약’에 적합하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단번도약은 전통적인 사회발전 단계를 뛰어넘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단숨에 전환하는 사회발전전략이다. 제조업 산업 기반을 거치지 않고 ICT 기반 지식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최근 북한이 내세운 국가발전전략에 부응하는 동시에 북한 내부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단번도약은 사회적경제의 토대에서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가장 빠르게 원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소냐 노브코빅(Sonja Novkovic) 캐나다 세인트메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적경제가 소규모·저수익이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오히려 경제에 대한 대담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획기적인 기술 대부분은 공공 부문, 즉 정부의 자금과 학계의 참여로 발명됐다. 투자자 소유 기업은 더 많은 혁신을 이루기 보다 단기 수익 증대를 좇는다”는 게 노브코빅 교수의 설명이다.

라파엘 베탕쿠르(Rafael Betancourt) 쿠바 하바나대학교 도시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개방, 즉 경제 자유화는 민영화·규제완화·외국인 투자를 통한 시장경제영역의 확장을 가져오지만, 사회안전망이 제거되고 소득 불평등에 따른 가정경제 약화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사회적 연대적 경제 접근은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사회적경제가 북한의 체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1인 통치체제라는 특수성, 체제 붕괴에 대한 저항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남한식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유도하는 방법이 아니라 ‘발전전략’임을 설득시키고 공동연구와 다양한 교류 등을 통해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조성찬 원장은 “우리의 사회적경제를 북한에 무리하게 적용할 경우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회주의 경제를 존중하면서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 정부는 특구 개발이나 중요 산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반면,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부문은 자율성을 주고 있다. 조 원장은 “쿠바에서 보듯 협동단체가 지역발전의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설득하고 국제규범에 맞는 제도 변화를 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우선적으로 북한 주민의 필요에 기초해 접근한다면 호응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브코빅 교수는 “자유화가 자본주의 시장을 암시하는지, 사회적경제의 필요성이나 강·약점을 (북한과) 공유해야 한다”며 “국가는 사회적경제 정책을 공동으로 수립하고 혁신투자의 위험을 감수하는 파트너가, 사회적경제조직과 시민사회는 국가가 취하는 방향으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한국의 경험을 (북한에)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탕쿠르 교수는 쿠바의 사례를 들어 사회주의 모델 안에서 사회적경제가 구현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쿠바는 2011년 이후 사회연대경제를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수립했다. 사회적·환경적 목표를 우선시하고 집단적으로 연대하는 전략이다. 생산자, 노동자, 소비자, 시민이 함께 자본의 재생산이 아닌 노동이 삶의 중심인 사회적경제를 구상하는 모든 활동이 이에 속한다. 베탕쿠르 교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대중부문 간 균형을 이루면서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이며 번창하는 사회주의 건설 방법을 북한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권력이 집중되어 민주적 전통이 약한 사회에서는 중앙 권력을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법적 체계, 제도적 매커니즘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실정에 맞는 사회적경제를 만들기 위해 공동연구와 교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사회적경제는 개인 중심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반면, 북한 사회는 당이 통제하는 사회라는 한계가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농업, 공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을 구성하고, 지역 대표나 여성단체 등을 대상으로 제 3국에서 사회적경제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변윤재 기자 ksen@k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