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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은 왜 울음바다로 변했을까

얼마 전 서울지방법원 법정은 갑자기 울음바다로 변했다. 재판을 받던 죄수가 너무나 억울하다고 우는 수도 있고, 생각보다 형량이 너무 많이 나왔다고 징징대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법정 전체가 울음바다로 변하는 모습은 그다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피고인 혼자서 우는 게 아니라 방청객들이 모두 함께 울었으니 필연코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 게다. 이 날 법정에 나온 피고는 나이 어린 16세의 여학생이어서 그 사연이 더욱 궁금하다. 한참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여학생이 왜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게 되었을까.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선 여학생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입학하기 까지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량학생들의 표적이 되어 폭행을 당하면서부터 그들에게 끌려다니는 처지로 전락했다. 학교생활은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번 나쁜 길로 들어서면 조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공부는 멀리 가버리고 불량학생의 패거리가 되어 저지른 비리 때문에 경찰에 끌려가기 시작하면서 전과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전과가 쌓이면서 이제는 구원하기 어렵다는 낙인이 찍혔다. 이 날 재판도 동일전과가 있어 풀려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여학생의 표정은 절망과 회한으로 가득 차 한마디로 죽을상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어린 학생의 머릿속은 자신에 대한 저주와 주위 어른들의 실망 때문에 오직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재판장이 입정하여 자리에 앉았다. 여성 부장판사였다. 재판장이 자리에 앉았을 때 법정은 고요해졌다. 태풍전야처럼 판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지 불안하기만 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훈풍을 기대할 수는 없고 천지를 뒤흔드는 벽력소리가 터질까 조마조마한 생각뿐이다.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이 왜 이처럼 길게 느껴질까. 이 때 재판장의 입이 열렸다. 조용한 목소리로 여학생을 앞으로 불러냈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큰 소리로 따라 해야 한다. 알았나?” 여학생은 기어드는 목소리로 “네”하고 답변한다. 재판장은 일부러 큰 목소리로 외친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두 번째 까지 따라하던 여학생에게 재판장의 세 번째 구호가 터졌다. 이 대목을 따라 외치던 여학생이 그만 펄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넋을 놓고 통곡한다. 법정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덩달아 소리 내어 운다. 판사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세 번째 구호는 범죄를 저지른 여학생의 슬픔과 외로움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여학생은 아무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며 비리학생으로 전락했던 것임을 재판장은 예리하게 꿰뚫어 봤던 것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오직 처벌 위주로 다스리는 사회적 냉대 속에 선도되어야 할 수많은 학생들이 그동안 얼마나 전과자로 내몰렸을까.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으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주위에 너를 도와주려는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을 때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으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을까.

학교폭력과 학생비리는 오히려 학생을 방치하고 외면하는데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사회 인사들이 먼저 깨달아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여학생은 법정을 통곡으로 몰아넣고 학교에 복귀했을 것이다. 다시는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며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이 틀림없다. 사회가 자칫 외면하기 쉬운 구석구석을 꿰뚫어본 재판장의 혜안(慧眼)에 존경을 표한다.

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