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1) - 사회적경제 뿌리 되새기기
사회적경제의 배경
1991년, 세계 경제계는 예상치 못하게 한 체제로 통일되었다.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자유시장체제가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남미의 대다수 지역, 동유럽과 구 소련지역서도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자유시장경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탁월함을 발휘했다. 자본주의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한 서유럽국가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는 이를 반증하고 있다. 뛰어난 기술적 진보, 과학적 발견, 교육과 사회의 진보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풍요의 이면이 서서히 드러났다.
부의 분배가 1%의 사람들에게 편중되면서 절대빈곤층이 증가했다. 급격한 성장에 따른 환경오염의 증가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적절한 통제를 시도했고, 그 결과 제도의 우수성이 더욱 입증되고 있다. 통제 없는 자본주의는 경제제국주의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문제는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런 훌륭한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것일까? 자유시장경제가 소수특권층의 방종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영감과 자유의 원천이라는 전제하에서 부유한 주주들의 경제적 목표를 위해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빈곤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니계수
경제적 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수이다.
지니계수는 0~1 의 값을 가지는데, 0이 되면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동일하다는 의미가 되고, 1이 되면 1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소득이 한 푼도 없지만 나머지 1명은 온 나라의 소득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지니계수가 0에 가가까울수록 경제적 불평등도는 낮아지고,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경제적 불평등도는 높아진다고 해석한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그래프에서 로렌츠곡선의 안쪽 면적 A가 작을수록 면적B가 커져 평등도 0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다.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상당히 불평등한 분배로 해석할 수 있으며 2007년 중국의 지니계수는0.46으로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치를 내란유발 수준으로 보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에 의한 자본주의의 명암
자본주의는 기술적 혁신과 과학적 진보를 가능하게 했고, 그로 인하여 인류에게 과거 유래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안겨다주었다. 가장 극적인 예는 중국이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며 문을 개방한 중국은 초고도성장을 이루면서 4억이 넘는 중국인의 빈곤 문제를 대부분 해결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자연적이지 않은 급속성장은 심각한 사회 문제도 남겼다. 고도성장, 개발우선에 따른 환경오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부의 편중과 분배의 불평등으로 사회 분위기도 흉흉해졌다. 통제가 없는 사회문제는 가중되고 있으며 승자 독식으로 인해 불공정한 경쟁과 시장 진입장벽이 발생하여 부와 빈곤은 새로운 세습 유물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PC통신과 이메일을 통해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글이 유행했다. 전 세계 부의 94%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6%를 두고 전 세계의 60%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나눠가진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생활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 6분의 1인 10억 명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이런 식의 짤막한 통계와 함께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자는 교훈을 첨가한 글이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그림과 함께 책으로도 출판된 이 이야기는 부의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을 거짓말 같은 동화로 만들어 그 심각성을 희석시킨다. 세계의 경제 리더이자 대표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의료보험 수혜율은 전체 인구 2억 8천 명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4700만 명만 혜택을 보고 있고, 국민 6분의 5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모든 생명은 가치가 있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며 피까지 흘렸던 서구 사회건만, 냉혹한 자본의 논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조차 지킬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정부, 시민, 기업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우선 정부이다.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에 고삐를 매어 한계점을 정해준 것은 정부의 공이 크다. 시장에서의 활약만 봐도 대단하다. 소비자 기만을 금지하고 불량제품이 시장에 나도는 것을 막았으며, 모든 국민에게 교육과 의료를 보장하고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감시한다. 안전을 담당하고, 화폐의 공급과 은행의 활동을 관리한다. 정부는 자유시장경제에 교통법을 제정했으며 동시에 경찰관 역할을 수행한다. 흔히 수정자본주의, 자본주의 2.0이라 불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곧 한계에 다다랐다. 기업도 하나의 국민 집단이고 그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기에 정부가 사회 문제를 강압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또 시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덩치를 불려나간 정부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공룡이 되어 사회 질서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비효율적인 관료제와 부패 말이다. 시장을 감시해야 할 정부가 부패하자 다시 고삐가 느슨해졌다.
모든 감시활동을 정부에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뜻있는 시민과 양심적인 기업인이 나타났다. 비정부기구, 시민단체, 자선단체, 복지재단으로 불리는 시민세력의 대두이다. 시민세력은 환경 문제, 기업 감시 문제, 소비자 보호 등 피부로 와닿는 문제에서 빛나는 활약을 하며 사회 질서 확립에 공헌하였다.
거기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기업 역시 한 사회의 일원이므로 다른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초기 사회적 책임론은 그야말로 “해는 끼치지 않는다”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수익은 포기하지 않은 채 사람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수준의 책임이다. 불량품을 팔지 않거나 폐기물을 무단으로 방류하지 않고, 정부 관료에게 뇌물을 주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책임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환경에 좋은 일을 한다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기업은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으며,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다. 또한 직원에게 학습과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정부의 기업 규제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정책제안을 하거나 연구에 협력하기도 한다.
시민세력과 기업의 책임감 강화로 인해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 3.0의 시대로 진보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권력 및 자본과 결탁하면서 변질되었다. 시민세력은 사회적 감시를 게을리하거나 이권투구를 하기도 했고, 혹은 IT 정보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도태되었다. 기업의 책임감은 보여주기식 홍보 수단으로 전락한다. 하청업체와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 기업을 보고 책임감이 강하다,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이익을 위해 설립되고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현대의 복잡한 기업구조는 기업이 온전히 사회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제 나올 수 있는 카드는 다 나왔고, 자본주의는 진보할 기회를 잃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 은행이라는 기적이 일어났다.
무하마드 유누스(Muhamad Yunus)의 등장
“나는 자유시장경제가 소수 특권층의 방종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영감과 자유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1940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무하마드 유누스는 미국 밴더빌트대학교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은 경제학 전문가이다. 그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인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가빈곤의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경제전문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 사회단체, 기업 등의 역할에 대하여 실험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성공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선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일환 중 하나가 바로 ‘그라민 은행’이다. 유누스의 등장으로 사회적경제는 비로소 이름을 갖고 그 행동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차후 연재분에서 서술한다.
고재철 한국사회적경제신문 대표
교정_장이슬 한국사회적경제신문 기자
고재철 대표의 ‘사회적경제 뿌리 되새기기 : 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는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무하마드 유누스 저)’ 기획 특집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