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과 시장실패
라준영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사회적기업은 사회혁신을 위한 기업조직으로서 시장원리를 활용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한다. 시장은 인류가 빚어낸 가장 효율적인 자원배분 메커니즘이자, 변이·선택·복제의 진화원리에 따라 비즈니스 생태계를 창조해 온 디자인 알고리즘이다. 사회적기업은 이러한 시장원리의 효율성과 혁신성을 활용하여 사회문제를 규모 있게 해결하겠다는 조직적 시도이다. 그래서 복지국가의 실패를 우려하는 많은 이들은 사회적기업을 기존 비영리부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조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현황을 보면 이런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인증 받은 1000여 개의 사회적기업 중 만족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보이는 기업이 극히 드물며, 사회 투자자들은 투자할 곳이 없다는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흔히들 사회적기업의 빈약한 비즈니스모델과 취약한 경영역량을 이유로 들지만 과연 그것 때문일까?
전통적으로 사회문제는 시장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인식되어 왔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외부성, 공공재 등의 구조적인 시장실패요인 때문이다. 때로는 시장실패의 직접적인 결과가 곧 사회문제인 경우도 많다. 사회적기업의 시장실패는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가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지체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은 구조적인 생산성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며 일반 시장에서 민간기업과 경쟁할 수가 없다. 장애인 고용의 사회적 가치를 아무도 구매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파괴적 혁신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아도 잉여가 충분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큰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이 가능은 하다. 그러나 저개발국과 달리 우리나라 정도의 발전된 국가에서는 그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결국 대부분의 사회적기업이 시장실패 영역에서 자신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보상 받지 못한 채 기업 활동을 영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에 시장원리의 효율성과 혁신성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시장에서는 돌아오는 것이 커야 경쟁하고, 남은 것이 있어야 혁신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기업의 세계란 시장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회적 가게’들이 상호 부조하는 일종의 공동체에 불과한 것일까? 복제와 확산을 통한 사회혁신은 그저 사회적기업의 수사와 몽상일 뿐일까?
사회적 경제에서 시장은 결코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의식적으로 구매하여 시장의 가격기구 안에 통합시킬 수 있는 기제가 필요하다. 사회적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법이 있다. ‘눈먼 시계공’의 자생적 시장이 아니라 ‘현명한 시계공’이 인위적으로 준(準)시장(quasi-market)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시장은 임팩트 있고 혁신적인 사회적기업에게 한정된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함으로써 확장과 복제를 통한 사회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자본시장에서는 임팩트가 큰 사회적기업에 투자하되, 대상 기업의 시장실패 정도에 따라 보조금, 인내자본, 대출, 지분투자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 상품이 균형 있게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영업활동을 통해 수익성과 공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적자를 보는 사회적기업도 사회적 임팩트가 크다면 대규모로 투자하여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단순한 수익성이 아니라 문제해결 솔루션의 확장과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효율성과 혁신성에 더 주목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은 풍부한 자선자금을 기반으로 이러한 촉매형 성장자본을 다양하게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선자본이 부족하므로 보조금이나 기부금을 매칭하여 사회투자자본의 수익성을 보장해 주는 형태의 혼합형 투자방식이 유용할 수 있다. 민간자본을 사회문제 해결에도 동원하자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사회혁신채권(SIB)도 투자 받는 사회적기업의 자기부담 비중 등을 조정하여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사회적 상품시장에서는 공공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리적 소비시장도 있지만 주로 소비재 제품 쪽만 관련이 있어서 영향력은 미미하다. 오히려 대규모의 조달‧위탁시장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또는 대기업이 구매 시장의 문호를 사회적기업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단순한 보호시장일 경우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므로 획일적인 우선구매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사회·경제적 성과와 혁신 성과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최적 가치구매 기준을 제시하고,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공공시장에서 사회적기업간 협력적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을 통한 의식적인 시장실패 극복 노력은 사회적 경제 생태계에서 변이·선택·복제의 진화론적 시장원리를 원활하게 작동시켜 준다. 그래야 일반 비즈니스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경제에서도 기업 활동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높아지고 사회문제 해결의 규모도 동시에 확대되어 사회혁신이 더욱 활발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