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의 비밀
스페인에도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다. 2008년 이후 기업들의 도산은 급증했고 고용은 20%나 하락했다. 그러나 몬드라곤 그룹은 2008년 한해에만 1만 5천 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페인 기업의 도산률이 2.4%에 이르렀던 2008년 한 해, 몬드라곤 그룹 내에 255개 회사 중 파산한 기업은 단 한 개였다. 그것을 보고 각지에서는 협동조합의 위기, 불안한 미래를 전망한다. 그러나 여전히 몬드라곤에는 어떤 위기도 극복할 힘이 있다. 역동성이 있고 새로운 생각이 있으며 협동하려는 젊은이가 있다. 국제 금융 위기 가운데 오히려 일자리를 창출해내며 기적을 일으킨 기업 몬드라곤, 그 기적의 비밀을 무엇일까?
잊혀진 전통의 부활
몬드라곤은 바스크 지방 피레네 산맥 협곡에 있는 작은 도시로, 프랑스어로 ‘용의 산’이라는 뜻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땅에서 바스크인이 가진 재산은 노동력뿐이었다. 바스크의 농민은 대가족을 기반으로 ‘아우소란’이라 부르는 농장을 경영하며 목장과 초지를 공동으로 사용했는데, 농촌과 마찬가지로 바스크의 어촌에서도 배를 공동으로 사용하며 선주와 선원이 어획량을 공동으로 분배했다. 그리고 어획량의 6%는 노인과 미망인, 환자를 위해 기금으로 모은 것이 당연한 전통이었다. 이 전통을 현대의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것은 이 지역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아리에타(Jose Maria Arizmendi arrieta) 신부였다.
그는 1915년 몬드라곤에서 50킬로 떨어진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3살 때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한 그는 12살이 되던 해 신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스페인인 시민혁명으로 왕정과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공화국이 설립된 직후였다. 그러나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왕당파의 반란으로 내전이 일어난다. 호세 신부는 공화정을 치르기 위해 종군기자로 참전해 프랑코 반란군과 싸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으로 반란군이 승리했고, 호세 신부는 체포되었다가 사형 직전 간신히 석방된다. 목숨을 건진 호세신부가 몬드라곤에 부임한 것은 1941년,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호세 신부가 부임할 당시 몬드라곤은 폐허였다. 공화군을 지지했던 몬드라곤에 대한 탄압은 내전 후에도 계속되었고 약 1만 명의 주민 중 8천 명이 몬드라곤을 떠난다. 이 가운데 호세 신부는 주민 모두가 주인이 되어 함께 부흥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았다.
호세 신부가 말하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벌어들이는 이익을 나눠가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미래에 회사가 반드시 그 돈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당시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2013년 현재, 결국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던 호세 신부, 그는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가 행복하게 공존하는 기업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다.
우르사 건설
‘우르사 건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를 재건하는 것이다.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 지하터미널을 맡은 우르사 건설,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을 건축 중인 우르사 건설은 바로 몬드라곤 그룹 소속의 협동조합 기업이다.
에로스키 유통
마드리드 시내에서 40킬로미터를 달려가야 에로스키 하이퍼마켓을 겨우 찾을 수 있다. 에로스키는 몬드라곤 그룹의 소매유통업체이다. 에로스키의 소규모 매장은 도심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주유소까지 겸비한 대규모 하이퍼마켓은 모두 도시외곽에 자리한다. 시내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에로스키는 소비자의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2008년에만 19% 성장을 하며 164개 신규매장을 열었다.
에로스키는 일자리창출에 적극적이지만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에는 신중하다. 비정규직은 전체 조합원의 15% 이하로 제한한다. 비정규직은 1년 이상 채용하지 않는다. 1년이 가까워지면 정규직조합원이 될 것을 권유한다. 유통기업 특성상 계절에 따른 비정규직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하지만 몬드라곤에서는 가능한 모든 직원이 정규직이기를 바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같을 뿐 아니라 조합원 간의 임금 격차도 크지 않다. 일반 주식회사의 경우 임금차이가 300배에 이르기도 하지만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는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10배를 넘을 수 없다.
노동금고
노동금고는 1959년 호세 신부가 설립한 은행이다. 호세 신부는 소규모의 협동조합이 생존하려면 독립적인 자본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노동금고는 마을 주민이 모은 500만 헤세타(한화 약 4천 5백만 원)으로 출발했다.
다른 몬드라곤 그룹의 회사가 그렇듯이 노동금고의 배당금 역시 건전한 투자로 매년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신규 협동조합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전문적인 자문을 해 주기도 한다. 노동금고가 창출해 내는 이익의 25%는 새로운 협동조합의 설립이나 기술개발을 위해 투자를 하고 있다.
로라멘디
BMW 폭스바겐, 벤츠와 같은 세계적 기업에게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로라멘디는 지난 25년간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거래해 왔다. 주식회사였던 로라멘디는 지난 2003년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협동조합 기업으로 전환하였다. 기업의 주인이 된 직원은 열정적으로 혁신을 이루어냈고 회사는 안정적으로 발전했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로라멘디의 선택은 대성공이라 평가된다. 몬드라곤은 이제 전 세계 협동조합의 산실이다.
몬드라곤 그룹
몬드라곤 그룹은 이제 전 세계 20개국에 79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제기업이다.
몬드라곤 그룹은 8만 5천 명의 조합원이 각자 균등한 출자금을 내어 설립한 111개의 협동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몬드라곤 그룹의 111개 협동조합, 120개 자회사 등 총 255개 사업체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있다.
몬드라곤 그룹은 같은 규모의 자본을 출자한 조합원이 직접 운영하는 협동조합기업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조합원 총회에서 경영진을 임명할 이사진을 선출하고 사업계획을 승인한다. 똑같이 출자금을 낸 전체 조합원은 총회에서 한 사람당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는다. 기업의 이익금 역시 소수의 대주주가 독식하는 기업회사와 달리 전체 조합원에게 배당금의 형태로 균등하게 분배된다.
한 달에 한 번 몬드라곤 그룹의 산업별 이사가 모이는 총이사회가 열린다. 몬드라곤 그룹이 나아갈 방향과 협동조합간의 협력을 논의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사업체는 255개이다. 통합된 목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몬드라곤에서 가장 중요한 철칙은 소통을 통한 합의이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매우 느리다. 토론이 훨씬 더 길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풍부한 논의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액셀러레이터를 밟듯이 대단한 추진력을 보인다. 모든 조합원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결정된 사항을 향해 스스로 매진하기 때문이다.
몬드라곤의 비밀은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정직하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사회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가장 열심히 싸우는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직장을 잃고, 한 기업의 성공을 위해 다른 기업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미래까지 모두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곳, 이 단순한 길이 바로 세계의 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이며 50년째 성장해가고 있는 몬드라곤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