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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볼로냐 도시 이야기


오래된 미래, 볼로냐 도시 이야기



 



 



 



고재헌



한국사회적경제신문 이사



 



 



 



19세기 가난한 노동자의 협동조합, 이탈리아에서 꽃피우다



분배와 평등, 상호부조를 원칙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10년 뒤 이탈리아에서도 싹을 틔웠다. 오늘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협동조합은 효율적이고 윤리적인 기업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100년 넘도록 지속할 수 있었던 협동조합의 힘이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이 열등한 형태의 기업이라는 세간의 편견에 반박하며, 오히려 산업화 단계의 모델인 주식회사가 이미 과거의 것이며 협동조합 형태가 미래를 위한 이상적인 기업 형태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협동조합은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13천명의 조합원을 가진 인기 축구단 FC 바로셀로나, 전 세계에 뉴스를 제공하는 AP통신, 오렌지의 대명사가 된 Sunkist 등 협동조합은 오늘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실천하는 유일한 기업형태로 인정받고 있으며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협동조합이 모인 국제조직도 있다. 1895년에 설립된 국제비정부기구 ICA(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국제협동조합연맹)이 그것으로, 협동조합의 대원칙 중 하나인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ICA는 전 세계 협동조합 간의 연대감 조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균형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경제력은 한국의 5년 예산과 비등한 수준으로, 세계 88개국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지역의 점조직으로 시작하지만 이미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다국적 대기업 못지않은 자본력으로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볼로냐 도시 이야기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볼로냐. 거대한 굴뚝도 공단도 없지만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의 하나로 꼽힌다. 올해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은 실질적으로 0%, 하지만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볼로냐는 생기가 넘친다. 매년 130만 명의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볼로냐가 있는 북동부로 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로냐 경제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 지역에 강력한 조직력을 가진 협동조합이 은행, 소비, 노동, 서비스 등 전 분야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CO.OP라고 표기하기도 하는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이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으로, 성장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협동조합은 평등, 분배, 상호부조를 원칙으로 하는 자발적 경제조직이다. 스테파노 자마니 볼로냐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경제 모델은 협동조합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민의 절반이 조합원인 볼로냐에는 4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있고 조합은 지역 GDP30%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볼로냐가 협동조합의 수도라 불리는 이유이다. 볼로냐는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디아나 식당, 대표적인 메뉴는 파스타와 살라미다. 살라미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지역생산품이다. 디아나 식당도 조합방식으로 운영된다.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한 업체 역시 협동조합이다. 지역조합에서 생산한 우수한 제품을 조합식당이 소비하는 것이다.



1963년에 설립된 프로슈토 육가공조합의 연 매출액은 500만유로, 이곳에서 만든 살라미는 해외에도 수출된다. 살라미의 맛을 좌우하는 건 숙성, 그래서 육가공식품협동조합에는 저온저장시설을 만들고 관리하는 별도의 조합이 있다. 이 일대는 육가공에 필요한 저장, 기계 포장까지 작지만 전문화된 조합이 거미줄처럼 엮여서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를 이루고 있다. 전문성과 협력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지역생산시스템, 이것이 바로 협동조합 방식이다.



볼로냐의 협동조합의 주제가 항상 순항했던 것은 아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핍박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은 조합은 1980년 다국적기업의 공세로 또 한 번 암흑기를 맞았었다.



 



뜨거운 가을 (1969~1979) - 피아트 자동차 노조에서 시작된 대규모 노동자 파업



위기를 벗어나는 데에는 역설적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파업 사건인 뜨거운 가을이 큰 역할을 했다. 해고된 숙련공이 분업화된 공방을 열면서 연합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볼로냐의 협동조합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이탈리아 레가 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줄리아노 폴레티 회장은 그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우리는 작은 공방들이 스스로 모일 수 있도록 연합체를 만들었다. 그것이 협동조합이다. 규모를 키워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장인 조합 내에서도 해당되는 방식인데 수많은 소규모 장인 기업이 재료를 공동구매하거나 공동으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했다.”



소규모식당에서 대규모 건설까지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볼로냐. 대규모 시청공사를 주도하는 이 업체 역시 조합이다. 1933년에 설립된 건설협동조합은 연간 320조 원의 사업을 맡고 있다. 아드리아노 투리나 볼로냐 건설협동조합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탈리아 법에 따르면 입찰 자격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우리처럼 대규모 사업을 행한 적이 있는지 해당 분야의 경험 여부가 (낙찰의) 관건이다. 우리 조합의 가장 큰 강점은 경제성이다. 적정한 가격에 우수한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건설협동조합이 가진 경쟁력이다. 유럽 최고의 건설기업으로 성장한 조합은 5천 명의 조합원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과 사람을 위한 투자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패션 산업의 수도 밀라노를 제치고 유럽과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로 떠오른 볼로냐.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다른 점은, 조합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합원에게 가능한 가장 좋은 결과를 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일자리일 수도 있고 좋은 제품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자본으로 이루어진 주식회사와 다르다.”



줄리아노 폴레티 레가 협동조합 회장의 단언이다.



가격보다 생산지를 먼저 챙기는 것은 볼로냐 소비자의 공통된 습관이다. 50만 명의 조합원이 마트의 주인이자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매하는 상품의 절반은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다. 특히 조합에서 생산하는 유가공식품은 독립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특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협동조합 마트는 지역의 생산자에게 무리한 가격인하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트 운영자도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 같은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최저가 경쟁도 없다. 각 협동조합은 경쟁을 고려한 가격 책정 능력을 가지고 있고, 시장의 원칙을 적용할 줄도 안다. 일반기업의 경우 10%정도의 이윤이 나면 그 이윤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법률에 따라 이윤을 조합 내부에 남겨놔야 한다. , 이는 지역사회에 재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볼로냐공법의 신화, 테스토니



협동조합 신화는 명품을 만드는 볼로냐 공방골목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볼로냐의 공방골목은 관광객이 많은 찾는 명소이다. 변변한 간판도 없고 화려한 광고도 하지 않지만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공방골목에서 생산된 명품은 볼로냐를 이탈리아의 제2의 부자도시로 발돋움하게 만든 보물이기도 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장인 공방은 대부분 협동조합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분업하는 공방끼리 서로 연합하면서 하나의 명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품브랜드를 보유한 나라, 이탈리아 명품은 협동조합체제에서 탄생했다. 볼로냐공법을 고집하는 테스토니가 좋은 예다. 테스토니는 품질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저가정책에 치중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테스토니는 볼로냐 뒷골목의 작은 공방에서 출발했다. 168번의 공정을 거쳐야 하니 하루 생산량은 고작 4컬레, 이렇게 탄생한 수제화는 80년 만에 세계적인 명품이 됐다. 명품 수제화 테스토니의 성장은 개별 장인 공방이 모인 기업, 하나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다. 이 시스템은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테스토니의 연간매출액은 4170만 유로이다. 작은 공방에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공방끼리의 이상적인 협력체계, 협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볼로냐의 명품은 평범하지만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지역 장인들의 완벽한 기술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철저한 네트워킹과 창조적인 조합원들이 일구어낸 빛나는 결실인 것이다.



 



모두에게 기회를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였던 볼로냐는 유럽 최고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살아있는 지역경제시스템인 협동조합의 토대를 둔 도시와 거대한 외부자본에 종속된 도시와 차이이다. 이안 맥도널드 ICA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협동조합은 구성원에게 그 소유권이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 협동조합은 상품 구매자에게 노동 협동조합은 노동자, 주택 협동조합은 주택에 거주하는 자에게 농업 협동조합은 농부와 농장 노동자에게 소유권이 있다. 즉 근본적 차이는 소유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협동조합은 거대 사업체나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었고 함께 모여 필요한 자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협동조합은 다음 세대까지 대물림될 것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협동조합을 통해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갔다는 사실을 보면 다른 나라에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