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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 사회적기업에 날개를달다

 


협동조합기본법, 사회적기업에 날개를 달다



최 혁 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반조성본부장


전 사회적기업 원주의료생협 부이사장



오는 12월 1일 드디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에 협동조합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시민 5인 이상이 모이면 전 산업분야에서 협동조합의 자유로운 설립과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서로 업종과 형태가 다른 협동조합들이 필요하다면 다양한 연합회를 구성하여 공동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는 특정 산업분야에서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협동조합의 설립을 허용해왔다. 농협법, 신협법 등 8개의 특별법이 허용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협동조합 설립이 불가능하여 노동자협동조합처럼 직원이 직접 소유하고 경영하는 협동조합이나 소규모 협동조합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협동조합에 참여를 희망하는 일반 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설립할 수 있는 협동조합유형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한 생협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300인 이상이 3000만원 상당의 출자금을 모아야 설립될 수 있고 또 비조합원에 대한 이용제한이 있어 시민들이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협동조합기본법은 기존 8개 특별법으로 제한되었던 협동조합이란 독특한 경제조직에게 상법상 회사와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고 그 나름의 특별한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협동조합기업은 경제적 약자들에 의해 설립되어 자본조달능력이 취약하고 설립초기 경영능력의 미숙하며 자체적인 시장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이번 기본법은 서로 종류가 다른 협동조합들의 연합회 구성을 가능하게 하여 협동조합기업들이 상호 협력을 통해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기본법 제정에 따른 제도적 변화는 협동조합의 활성화 및 다양화, 성장과 발전에 대단히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협동조합기본법이 협동조합 자체의 생태계에 가져올 변화 외에 특히 사회적기업운동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법인격으로서의 협동조합기본법과 일종의 가치개념인 사회적기업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어떻게 상호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일부에서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기업을 마치 서로 구체적인 형태가 다른 기업유형으로 보고 이를 분류, 비교하여 이해하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협동조합은 구체적인 기업유형이며 사회적기업은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업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치개념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새로운 법인격 보장하는 법으로서 의미가 있고, 사회적기업의 경우는 이러한 가치를 표방하는 법인체들에 대한 지원육성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고 분류하려 하면 개념상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법인격과 이와 연관이 깊은 기존의 지원육성법이 어떻게 관계형성을 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법일 것이다.


 


사회적기업이란 가치개념은 협동조합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생겨났다. 협동조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오웬은 동시에 사회적기업의 아버지라고도 말하여진다.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최초의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 가치개념인 사회적기업이 최초로 제도화된 사례는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법(1991년)으로서 이 역시 협동조합의 한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오늘날 우리는 모든 협동조합을 사회적기업이라 부르기를 주저하고 있다. 최초의 협동조합들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지만 협동조합조직들도 시장에서 경쟁하고 다양한 형태로 성장해오면서 소위 사회적가치 실현과는 거리가 멀어진 경우가 종종 생겨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사회적기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단지 조합원의 배타적인 이익만을 위해서 운영되는 협동조합까지 사회적기업으로 부를 수는 없게 되었다.


 


오늘날 사회적기업이란 가치개념은 협동조합의 역사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면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법인유형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협동조합의 역사적 경험은 자본투자자 중심이 아닌 이해관계자의 민주적 참여에 기초한 경제조직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적 참여와 투명성이 기업의 사회적인 가치실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도 알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경험이 공유될 수 있다면 협동조합이 아닌 다른 형태의 법인유형을 통해서도 사회적기업의 가치실현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협동조합과 상법상 회사의 장점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기업 모델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적기업이란 가치개념은 협동조합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그 구체적인 실현가능성을 체득해왔기에 결과적으로 협동조합의 역사적 전통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훨씬 역동적인 모습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사회적기업은 전통적인 협동조합들이 축적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환경이 부여한 사회경제적 충격에 직면한 각국 정부의 협력까지 이끌어내면서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들이 지역의 타 협동조합 조직들과 연대,연합을 통해 성장해가고, 몬드리곤협동조합그룹의 금융조직이 청년들의 소셜벤처를 지원하는 모습 그리고 영국의 협동조합연맹이 매년 상당한 기금을 조성하여 청년들의 사회적기업 창업을 지원하며, 캐나다 신협조직이 만든 데잘딩 기금이 사회적기업의 발전에 토양이 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구체적 사례이다. 그러한 협력의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 협동조합들도 시대정신과 부합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부의 다양한 지원에도 사회적기업의 자생적인 성장에 목마른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은 가뭄에 단비가 될 것이란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해준다. 물론 서구사회와 비교할 때 그 발전경로가 뒤바뀐 측면이 있어 실제로는 어떠한 연관효과가 생겨날지 아직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서구사회에서는 민간 협동조합의 다양한 발전과정에서 사회적기업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 제도화되었고, 따라서 사회적기업은 협동조합이 축적한 경험과 자산을 배경으로 자립적인 역량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정확히 그 반대의 경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서구사회와 비교할 때 그 선후의 차이는 있지만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과 그에 따른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조직’의 확산은 기존 사회적기업운동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협동조합 법인형태의 사회적기업이 많아질 것이고 이는 풀뿌리 시민자본이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기업에 투자될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풀뿌리 시민자본의 투자와 그에 따라 시민참여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의 경쟁력과 투명성이 높아지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서구와 달리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육성제도가 먼저 정착되면서 오히려 후발주자인 협동조합의 성장에 보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하여 새로 설립된 협동조합들은 기존의 사회적기업육성정책에 힘입어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서구사회에서처럼 협동조합이 성장해가면서 조합원의 배타적 이익에 집착하여 점차 사회적 성격을 상실해가는 것에 대해 사회적기업운동은 지속적인 긴장과 자극을 제공하여 협동조합계 전반의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기본법에 포함된 사회적협동조합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의 법인격으로서 협동조합기본법과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협동조합기본법과 사회적기업육성법의 적용을 동시에 받으며 성장해나가는 가장 구체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일반 협동조합에 비하여 공익성과 비영리성을 강화한 법인형태로 사회적기업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된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인 사회적협동조합의 법인격이 제도화됨으로서 사회적기업 인증제도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법인격 안에 사회적기업의 속성을 이미 포함한 조직이기에 기존의 인증절차와는 다른 형태의 접근을 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은 우리 사회가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리고 사회적기업운동의 활성화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과 함께 일부 우려의 지점도 없지 않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의 정책이 대부분 외부로부터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유입된 것이기에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서구사회처럼 연계효과가 나타날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법과 전달체계에 의존함으로서 상호 협력적이고 유기적인 기능이 상실된다면 아마도 기대와는 달리 우리 사회의 긍정적 대안으로 성장해나가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정부의 역할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비록 다른 경로를 통해 유입되었을 지라도 그 본래의 속성인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 시스템과 행정의 전달체계를 올바르게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시민이 서로 다른 정책에 근거하여 편가르기를 하지 않도록 그리고 어떻게 해야 풀뿌리 시민들의 힘과 자원이 서로 모아져 건강하고 든든한 자립기반으로 조성될 수 있겠는지 깊이 성찰하면서 이 변화의 시기에 새로운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