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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장애아동 가족 94%가 돌봄 소비스 이용 못해”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장애아 마을돌봄제언

마을돌봄에 대한 관심 시급지역에 맞는 서비스 발굴해야

“옛날의 왕은 모두 장님으로 악사를 삼아 현송(絃誦)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들은 눈이 없어도 귀로 소리를 잘 살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박연)

“환과고독과 노유·폐질자(장애인) 가운데 직업이 있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를 제외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는 소재지 관아에서 우선적으로 진휼하여 살 곳을 잃지 말게 하라”(정종)

조선시대 장애인은 불완전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였다. 마을공동체는 장애인 본인과 그 가족을 도왔고, 국가는 그들을 보호했다. 장애인 부양 가족에게는 병역을 면제하고, 표창까지 했다. 장애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게 안전장치도 있었다. 장애인이 살해된 마을은 등급을 강등했고 장애인 학대는 엄벌에 처했다. ‘관현맹인’처럼 장애를 직업적 자질로 역발상한 사례도 있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공동체는 장애에 따른 차이를 이해했고 장애인을 돌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현재 장애 돌봄 정책, 특히 장애아동 돌봄과 비교할 때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교육 문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책과 제도가 성인장애인을 주대상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조선시대 장애 돌봄처럼,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장애아동에 대한 마을돌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최근 ‘성북구 장애아동 마을돌봄 활성화 포럼’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발제에 나섰다. 장애아동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고, 건강과 사회 참여에서도 중증장애인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장애아동 본인과 그 가족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 인구 가운데 19세 이하 장애아동의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정책의 시급성과 우선도에서 떨어지는 셈이다. 더욱이 장애아동의 특수성을 정책적 흐름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장애인의 자립과 자활을 강조하는 추세인 반면, 장애아동은 치료와 재활 중심의 의료지원이 필요한 까닭이다.

최 대표는 “장애는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정부와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다”면서 “마을돌봄에 대한 관심과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천적 장애가 늘어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최 대표는 “2017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추정 장애인구 267만명으로, 선천적 장애발생률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5.5%였던 선천적 장애발생률은 2017년 6.5%로 늘어났다. 특히 유전과 같은 요인 외에 출산과정에서 장애를 입은 경우가 2011년 0.9%에서 2017년 1.4%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2017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아동은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발달 장애인의 비율이 높았다. 자폐성 장애의 52.5%, 언어장애의 25.8%, 지적 장애의 18.7%는 장애아동이었다. 자폐성장애인 2명 중 1명, 지적 장애인 5명 중 1명이 장애아동으로 발달 장애인의 다수가 아동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타인의 도움이 수반돼야 하지만 장애아동 돌봄은 어머니에게 집중됐다. 2013년 <장애아동 및 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아동 주돌봄자는 어머니가 91.2%였다. 부돌봄자 역시 아버지(34.0%), 활동보조인(19.0%), 비장애 형제자매(10.9%) 순으로 가족이 부담을 나눠졌다. 그럼에도 주돌봄자는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하루 평균 12.34시간,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18.43시간을 투여했다. 경조사 참석은 물론, 본인의 병원치료, 비장애 형제자매의 주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 장애아동 돌봄에 온 가족이 매달리면서 가족 간 불화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46.9%), 비장애 형제자매(35.5%) 등 장애아동의 중요한 지지망인 가족관계가 흔들렸다.

최 대표는 “돌봄이 단기 보호와 외출산책, 이동 지원과 같은 일상적인 단순돌봄 외에 장애아동 입원시 간병보조처럼 특수 상황에 대처하고 신체와 사회성 발달을 위한 다양한 활동 지원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장애아동 본인 뿐 아니라 부모형제와 같은 가족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대표는 장애아가족지원사업,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아이돌봄지원제도 등 부처별 장애아동 돌봄정책이 실질적인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아가족지원사업은 전국가구 평균소득 100% 이하, 1인당 서비스 제공 월평균 40시간에 불과해 범위가 너무 좁다”며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은 6세 미만 아동이 제외된데다 성인장애인의 활동지원 및 요양에 맞춰져있어 아동의 발달단계가 반영된 전문적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이돌봄지원제도 또한 돌보미는 2211명, 광역별 기관은 1곳이므로 장애아동 가족의 이용이 불편하다”는 설명이다.

장애아동과 그 가족의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탓에 장애아동 가정 대부분은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말 18세 미만 장애아동은 8만831명이며, 이 가운데 중증 장애아동은 6만3404명에 달한다. 그러나 전국가구 월평균소득 100% 이하에 속하는 장애아동은 5.2%에 불과했다. 중증 장애아동 가정의 94.8%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지역공동체를 통해 장애아동에 대한 돌봄이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성북구의 정책 방향을 제언하면서 향후 장애아동 돌봄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성북구는 장애인 규모로는 서울시 7위, 중증 장애아동이 비률이 전제 장애아동의 82.7%나 되지만, 복지시설은 최하위권에 머물 정도로 인프라가 부족하다”면서 “아동친화정책에 장애아동의 ‘놀권리’를 포함시켜 특화된 장애아통합공간 조성, 지원조례 제정, 돌봄 사회적경제기업 활성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최 대표는 “중앙정부의 사업은 수요의 규모와 시급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지역 특성에 맞게 사회서비스를 기획, 발굴해야 한다”며 “다양한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조직을 중심으로 민민협력, 민관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장애아동과 가족을 주요 정책대상으로 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변윤재 기자 ksen@k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