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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인간을 위한 곳, 행복 위해 지어져야죠"

번역협동조합 주최 동네국제포럼개최소행주·홍은둥지 등 사례 공유

우리나라에서 공동체주택을 짓는다는 것주제로 주거 문화 변화 모색

집은 주거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부대끼고 생활하면서 켜켜히 쌓인 희노애락, 가정을 꾸리고 부부가 성장하고 아이를 키우며 한 가족이 만든 역사가 녹아있다. 그래서 집을 떠올리노라면 건물과 함께 사람의 온기, 밥의 구수한 냄새, 가족의 웃음소리 같은 공감각들이 연상된다. 그래서 시인이 “(중략)...집은 보물이다. 전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천상병 - 내 집)고 강한 애착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집은 점점 역행해왔다.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집은 ‘아파트’. 천편일률적인 외양, 똑같은 형태의 공간구성, 비슷한 구성의 가족들이 사는 공간은 생활의 편의를 높였지만 애착은 줄어들었다. 이웃도 정도 점차 희미해졌다. 층간소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웃과의 소통이 중요해졌지만, 과거보다 무관심해졌다. “사람 안에서 사람이 그리운 네모마을 이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고 싶다”(이금-아파트)고 소망했지만 공동체는 사라지고 비난과 불협화음이 남았다.

최근 진정한 집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집을 모색하는 것이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마을언덕 홍은둥지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실천에 옮긴 용자(勇者)들이다. 5살 꼬마부터 팔순 할머니까지, 연령과 성별, 직업은 제각각이지만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며 인간다운 집을 만드는 선두에 기꺼이 섰다.

‘우리나라에서 공동체주택을 짓는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성이 다뤄졌다. 참석자들은 공동체주택의 사례를 공유하고, 베네수엘라를 통해 주거가 삶의 질 향상에 미치는 영향에 공감했다.

변경미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에게 집은 용기와 믿음을 회복시켜 준 곳이었다. 그의 삶을 바꿖고 동네 주민들을 변화시켰다. 그는 “가족을 잃고 힘들었는데 동네주민들께서 감사하게도 많이 도와주셨다. 그래서 동네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같이 사는 걸 생각한 게 사랑방의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마침 적당한 집과도 만났다. 서대문구 부모협동조합이 어린이집을 열려다 위험물 저장ㆍ처리 시설인 주유소 50m 이내인 까닭에 시의 허가를 얻지 못해 빈 건물이 나온 것. 변 사무국장은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1층에 마을 공동 공간인 ‘거북골 마을 사랑방’을 꾸렸다. 동네 주민들이 같이 김장을 하고 감도 땄다. 다양한 재능기부 수업도 이뤄졌다. 서울에는 보기 드문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셈이다.

6년 이상의 시간은 공동체주택에 대한 확신을 굳건히 해줬다. 변 사무국장은 “좀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어떤 일이 생겨도 든든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고 싶었다”면서 마을언덕홍은둥지를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마을언덕홍은둥지는 서민형 공동체주택을 표방한다. 1층에는 협동가게, 2층에는 공동체 공간이 자리하고, 3층부터 6층까지는 주거공간이다. 가구의 구성이 다른 만큼, 집의 평수와 구성도 다르다. 같은 것은 하나,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직접 짓는다’는 마음이다. 덕분에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큰 문제없이 완공할 수 있었다.

변 사무국장은 “계약서 한 장 안쓰고 큰 돈을 빌려주신 분도 계셨고, 자금 융통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태기도 했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공동체의 정을 느낄 수 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류현수 자담건선 대표의 집은 가치있는 삶을 위한 조건이다. 류 대표는 “우리의 집은 공급자 중심이다. 가족마다 생활방식이 다른 만큼 집에 대한 요구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히자만 획일적인 공간에 지신을 끼워맞춰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정적인 공간을 감추려 짧은 동선, 넉넉한 수납공간과 같은 것들을 부각시킨다는 게 류 대표의 설명이다.

류 대표가 대한민국 1호 공동체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를 탄생시킨 것도 획일적인 주거문화를 바꾸려는 열망에서였다. 그래서 소행주는 수요자에 맞췄다. 모든 과정에 건축주가 참여해 맞춤형 공간을 만들었다. 류 대표는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며 “아파트에선 집집마다 문을 닫아놓고 살아가다보니,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놓는다. 셰프도 아닌데 각종 주방기기에 전자제품을 쟁여두고 산다”고 말했다. 획일적인 공간, 소통없는 주거가 낭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이웃과 함께 시간을 쌓아온 곳에서 쭉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러자면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하고, 공동체주택이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행주는 각 구성원이 이용하는 공동공간이 있다. 주방 설비 등을 갖춰 공동 육아와 공동 식사,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공동공간을 통해 이웃 간 대화가 살아났다. 공동체도 재건됐다. 마을 사람들이 같이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던 예전의 정서가 싹텄다. “집은 행복해지기 위해 지어져야 한다. 고 전제한 류 대표는 “강남 고급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생각이 맞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페트라 토바르 다마스 광역범위 주민평의회 대표는 집이 변화의 계기가 된다고 봤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최우선사업으로 극빈층에 300만호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주거복지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900만호 이상을 건설, 전 국토의 40%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채우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12개의 법을 새로 제정했다.

페트라 대표는 “국가는 지원을 할 뿐, 실질적인 건축자 역할은 지역 주민들이 맡는다”며 “이들을 위해 교육기관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일반 주택은 한달에서 6주, 아파트는 1년 이상 소요되는데, 모든 과정은 주민에 의해 이뤄진다. 계획과 설계, 건축까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집은 주거공간 이상의 의미가 됐다. 집에 대한 애착이 무척 커졌다.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을 염두하게 됐다. 가족을 키우고 서로를 보호하며 주민 자치가 실현됐다. 특히 페트라 대표에 따르면 건축 작업에 참여하는 주민 대부분은 여성, 이로 인해 “여성들은 아내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집은 인간을 위한 곳이다. 그러므로 상업적 용도로 지어져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면서 페트라 대표는 “삶의 질 이 개선되고 지역에서의 협력을 높이는 공공주택사업은 매우 놀랍고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더 많이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포럼은 번역협동조합 창립 6주년을 맞이해 기획됐다. 번역협동조합은 2013년 7월 통번역 프리랜서들과 후원자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으로, 2016년 서울시 사회적경제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변윤재 기자 ksen@k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