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2) - 사회적경제 뿌리 되새기기
무하마드 유누스
1947년, 방글라데시 벵갈 동부에서 태어나 미국 벤더빌트 대핚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무하마드 유누스는 테네시 주립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다 조국이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과 가난에 고통받는 것을 보고 1972년 귀국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지역주민들이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수공업을 하기 위해 많은 돈을 고리대금업자에게 이자로 납부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을의 사채를 모두 조사하여 빚을 다 갚아주었는데, 그 돈은 불과 27달러가 채 되지 않는 적은 돈이었다.
유누스 박사는 직접 은행을 찾아가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도록 은행을 설득했다. 은행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신용이 없다.” 그는 직접 보증인으로 나섰다. 마을 주민들은 유누스 박사를 보증인으로 세운 뒤 은행에 대출을 받아 나름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근면성실하게 일한 대가 중 일부를 떼어 연체 없이 빚을 갚아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유누스 박사는 보수적인 은행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직접 빈곤층에게 담보 없이 대출해주는 마을 단위 미소금융(Micro Credit) 은행을 설립하기로 했다. ‘마을’을 뜻하는 그라민 은행은 이렇게 태어났다.
이 성공에 고무되어 1983년 그라민 은행이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극빈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이었으나 회수율이 99%에 육박하여 그라민 은행은 1993년 이후 흑자로 전환하였고, 대출받은 극빈자 600만 명의 58%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며, 신용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기에 담보나 보증 없이 신용을 바탕으로 융자를 주고 있다. 그라민 은행의 융자 방식은 돈을 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지를 굳게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여 5명씩 그룹을 지어야 융자를 받을 수 는 연대 융자 시스템에 따라 운영된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자족의 기반을 닦는 데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하고 악착스러우며, 자녀의 미래에 보다 관심이 많은 고객이므로 여성 중심적 은행으로 운영하여 현재 고객의 95%는 여성이고, 원금 상환율이 98%에 이른다. 이러한 그라민 은행의 운영 방식은 이 은행이 지닌 독특한 성격과 남다른 사명감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기존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의 결과임을 반증한다. 이에 따라 그라민 은행은 사회적 목표를 가진 기업이 이윤 추구만을 꾀하는 어떤 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인이다. 그라민이 은행 뿐 아니라 그라민 폰, 그라민 의료 시스템 등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사회 인프라 구축에 나설 때도 이것을 시장경제원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라민이 사회적 목표를 가진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라민 은행의 16가지 결심
지금까지의 경제질서로 당연했던 것들이 그라민 은행의 등장으로 일순간 뒤집어졌다. 은행이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대출자를 가려내면 ‘사회적인 신용’이라는 허구의 증표가 없는 빈민은 영원히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으나 그라민 은행은 “차별을 반대한다.” 는 당연한 전제부터 출발하는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16가지 결심’이다. 몇 번의 수정을 걸쳐 84년 이후 현재까지 그라민 은행은 다음과 같은 ‘우리들의 16가지 결심’을 기업의 뿌리, 사상의 근간으로 두고 있다.
<우리들의 16가지 결심>
01. 우리는 그라민 은행이 정한 네 가지 원칙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준수하고 실천한다. 이는 규율, 단합, 용기, 성실이다.
02. 우리는 우리의 가족에게 번영을 가져다준다.
03. 우리는 허름한 집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을 수리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새 집을 짓는다.
04. 우리는 야채를 재배해서 먹고, 남는 것은 판매한다.
05. 파종기에는 가능한 한 많은 씨앗을 뿌린다.
06. 우리는 가능한 한 아이들을 적게 갖는다. 우리는 이 지출을 줄인다. 우리는 건강을 돌본다.
07. 우리는 자녀를 교육시키고, 교육비용을 충당한다.
08. 우리는 자녀들의 위생과 환경을 생각한다.
09. 우리는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다.
10. 우리는 깨끗한 우물에서 길은 물을 마신다. 만일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끓여 마시거나 명반으로 소독한 후 마신다.
11. 우리는 아들을 결혼시키며 지참금을 받지도 않으며, 딸을 결혼시키며 지참금을 주지도 않는다.
12.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할 때는 저항한다.
13. 우리는 더욱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집단 투자 비율을 늘려 나간다.
14.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다.
15. 우리는 센터에서 규율이 깨진 것을 보면 이를 바로잡는다.
16. 우리는 센터에서 신체를 단련한다. 우리는 모든 모임에 단체로 참가한다.
‘우리들의 결심 16가지’는 몇 개의 조항을 제외하고는 가난을 벗어나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깊다. 또 직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라민 은행의 주주와 회원, 고객 모두에게 적용된다. 또한 이것은 기업의 운영 방향 뿐 아니라 기업이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과도 연관이 깊다. 집을 짓고 위생시설을 개선하며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발전, 더 나아가 국가의 품격을 갖추는 기본적인 사업이다. 그라민 은행의 활동범위가 넓어질수록 사회는 풍요로워진다.
이러한 그라민 은행의 철학이 노벨평화상으로 세계에 공고히 인정받으면서 현대 경제에 세 가지 커다란 논쟁거리이자 새로운 개념을 던져주었다.
미소금융(마이크로크레디트)
그 중 하나는 한국어로 미소금융(微少金融)으로 번역되는 소규모 대출이다. 거대한 공룡이 되어 급격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금융권을 대신하는 대안금융 중 하나로,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여 자립 구제를 원하는 가난한 자영업자에게 소액대출을 해주는 프로그램 전반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미소금융은 크게 세 가지로, 사금융시장의 소비자금융, 전당포대출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전통비공식 미소금융이 있고, 농업, 어업, 가축금융 등을 이용한 특수 미소금융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저축은행, 신용연합, 민간 협동조합 조직을 갖춘 제3섹터 미소금융으로, 한국에 가장 먼저 소개된 유형도 이 유형으로 꼽힌다. 이후 2009년 말부터 여러 기업들과 정부에서 펀드를 조성하여 미소금융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라민 은행 방식과 외관상 비슷한 것 같지만 제도권, 금융권에서 수익을 목표로 구상한 사업이기 때문에 본래의 미소금융 운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평이다. 2014년 현재에는 제3섹터의 부패화, 자금 약화 등으로 한국에서는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두 번째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기존의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논의되던 이 개념은 그라민 은행의 부상과 유누스 박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인해 그 연구와 실험에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윤극대화 기업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나 이윤을 무시하면 존립이 어려워진다. 이는 민간 차원의 사업이 지속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비용을 자체적으로 충당하면서 사회 문제 해결을 꾀하는 영리단체인 사회적기업이 등장했다.
사회적기업은 투자자의 원금 회수와 더 나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수익을 추구한다. 발생한 수익은 투자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회사에 재투자되어 궁극적으로는 더 낮은 가격과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연구 개발 및 신기술 도입, 마케팅과 서비스 제공 과정에 혁신을 일으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킨다. 여기까지는 일반 기업이론과 같으나 사회적기업은 사업 영역 자체가 사회적 목적에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사회적기업의 활동 자체가 사회에 이득을 안겨준다. 이들은 기부금 등의 외부지원 없이 자체동력과 자기반복성으로 지속가능하며, 투자자는 원금을 회수하고 다른 사회적기업에 재투자하거나 소유주로 남아 회사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기업의 구조 자체가 이러한 순환성을 띄고 있으며,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동일한 개념에서 출발했어도 세부적인 제도와 지원, 구조는 각 국가마다 다르게 발전해갔다.
고재철 한국사회적경제신문 대표
교정_장이슬 한국사회적경제신문 기자
고재철 대표의 ‘사회적경제 뿌리 되새기기 : 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는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무하마드 유누스 저)’ 기획 특집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