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박쥐의 비밀
김도영
SK브로드밴드 사회공헌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내 목숨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유전학자 J. 홀데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형제 2명이나 사촌 8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버릴 용의가 있다.” 유전학적으로 그들이 곧 나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는 나와 1/2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고 사촌은 1/8을 공유하고 있기에 형제 2명과 사촌 8명은 각각 나의 유전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친족 이타주의(kin altruism)>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선의를 베푸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령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목숨을 걸고 구해준다거나,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또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자신에게도 필요한 것을 어려운 이에게 나누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자신의 생존과 발전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실마리를 의외의 곳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중남미 열대에 서식하는 흡혈박쥐는 밤마다 소나 말과 같은 큰 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삽니다. 그런데 원체 신진대사가 빨라서 사흘만 굶으면 죽고 맙니다. 평균적으로 베테랑 박쥐는 열흘에 한번 굶는데 신참 어린 것들은 사흘에 한번 정도 굶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동물의 피를 먹지 못하는 확률을 고려해서 계산해 보니 예상수명이 3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야생의 흡혈박쥐의 수명을 조사해 보니 15년 이상을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비밀은 바로 서로 돕는 행위에 있었습니다. 사냥에 실패하여 배를 쫄쫄 굶고 있는 동료가 있으면 배가 빵빵한 박쥐가 자신이 마신 피를 토해 나눠준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배불리 먹고 돌아왔는데도 나눠주지 않는 얌체 박쥐가 있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그 녀석이 다음에 굶을 때 다른 박쥐들이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름 규율이 엄합니다. 곱지 않은 이름의 흡혈박쥐지만 서로 도우며 살기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생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족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을 <호혜성 이타주의(reciproc altruism)> 라고 합니다. 물 속에 사는 청소놀래미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청소놀래미는 큰 물고기의 아가미와 몸, 심지어 입 속까지 들락거리며 기생충을 청소해주는 물고기입니다. 청소를 받으러 온 물고기는 입 속에 들어와 있는 놀래미를 맘만 먹으면 꿀꺽 삼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끼 식사보다 앞으로도 서비스를 오랫동안 받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호혜성 이타주의의 핵심은 <공생>입니다. 비록 지금 내게도 중요한 것이지만 남에게 나누어 줄때 결국 그 나눔이 돌고 돌아 내가 필요할 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최근 조선일보의 2014년 기업 사회공헌 전망에 대한 기사를 보면 두 가지 키워드가 두드러집니다. 바로 '동반성장'과 '참여형 사회공헌'입니다. 올해 초 주요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에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이 자취를 감추고 '동반성장'이 강조되었습니다. 또한 사회공헌사업의 기획 추진에 있어 기업 임직원과 지역사회, NPO는 물론이고 고객까지 함께하는 '참여형 사회공헌'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업 사회공헌의 트렌드는 기업이 사회에 이익을 배분하는 기부형 사회공헌에서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의 단계로 진일보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유전적인 '사회성의 진화'에는 냉엄한 법칙이 하나 있다. 이기적인 개인은 이타적인 개인을 이기는 반면, 이타적 개인들의 집단은 이기적 개인들의 집단을 이긴다는 것이다."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 "지구의 정복자"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