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과 사회적기업
박병근 (용인 해바라기 의료생협 원장)
40대 A씨는 요즘 허리가 아픈데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겪는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한 친구는 저 멀리 무슨무슨 병원이 용하다는 정보를 주고, 다른 친구는 어느 정형외과로 가보라고 합니다. 결국 A씨는 인터넷을 뒤져보기로 하고 검색을 해보니 포털 사이트에 수많은 정보가 뜹니다. 대부분이 광고입니다. 그 중 연예인이 광고모델로 나오는 유명한 병원을 선택하고 먼 길을 찾아가니 일단 MRI를 찍어보자고 합니다. A씨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해서 일단 처방전만 손에 들고 요통은 그대로인 채 병원을 나옵니다. 다음에는 어느 병원을 갈까 고민하면서...
A씨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주치의입니다. 주치의란, 쉽게 말하면 평소 나의 건강상태를 잘 아는 동네 의사를 말합니다. 몸이 아플 때 바로 찾아가서 상담하면 치료가 필요한지, 더 큰 병원에 가야하는지, 간다면 무슨 과를 찾아가는지 안내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주치의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동네 의원도 대부분 전문의가 포진해 있고 유럽의 선진국처럼 국가에서 주치의를 정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환자 본인들이 여기저기 광고성 정보를 접하고, 명의를 찾아서 의료쇼핑을 하게 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대형병원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소규모 의원 병원은 경영이 악화됩니다. 소위 말하는 ‘돈 되는 환자’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이와 같이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사회적기업인 ‘의료생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세운 의료기관이 바로 의료생협입니다. 의료기관의 주인이 곧 환자이며 환자와 의료인은 기존의 지시-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평적 소통의 관계가 됩니다.
용인 해바라기 의료생협 조합원 중 혈압 치료약을 8년째 복용하신 분이 있습니다. 의례적으로 3개월 분량의 혈압 치료약만 처방받을 뿐 관리가 안 되고 있다고 판단되어 3개월 동안 혈압 치료약을 끊어보고 식이요법과 병행하여 생활습관을 교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약 없이도 혈압이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한의사로서 제가 한 일은 그분을 관찰하고, 생활습관 개선을 도운 것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3개월 동안 소소한 문제를 상의하다 보니 지금은 그분 몸의 작은 변화들을 잘 짚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명의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방과 치료가 통합된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다수의 1차 진료 의료인이 필요합니다. 나를 잘 알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의사가 명의입니다. 나를 잘 아는 의사가 주치의이며, 무조건적인 고액 진료보다는 지역사회의 보건예방을 목적으로 하며, 사회적 약자도 주치의를 가질 수 있는 사회적기업인 의료생협이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병원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