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속도보다 합의”…지방선거 동시 개헌 놓고 시민사회 ‘신중론’ 확산
2026년 4월 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와 시민사회가 공동 주최한 자리로,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 속에서도 추진 방식과 시기를 둘러싼 이견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38년 헌법, 변화 요구 커졌다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 이후 38년이 경과했다. 참석자들은 급변한 사회·경제 환경 속에서 헌법이 시대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특히 권력구조, 기본권, 지방분권 등 핵심 영역에서 제도적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또한 디지털 전환과 인구구조 변화 등 새로운 시대 과제가 헌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회적 갈등이 복잡해진 현실에서 헌법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도 함께 제기됐다.
지방선거 동시 개헌, 찬반 엇갈려
토론의 핵심 쟁점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 여부였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평가했지만, 다수 토론자는 “선거에 개헌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개헌이 선거 이슈에 묻힐 경우 충분한 숙의 과정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유권자의 판단이 분산되면서 개헌 본질이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비용 절감 논리보다 민주적 정당성과 숙의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기우 명예교수는 “개헌은 선거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국민적 결단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 ‘단계적 개헌’ 대안 제시
시민사회 측은 여야를 아우르는 최소 공통분모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개헌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민 참여와 공론화를 기반으로 개헌 의제를 설정하고, 장기적으로 전면 개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접근이었다. 헌법개정절차법 제정 필요성도 함께 강조됐다.
이는 정치권 중심의 일방적 개헌이 아닌 국민 참여형 개헌 모델을 지향하는 흐름이었다.
시민사회가 의제 설정 단계부터 참여해야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김은주 소장은 “시민이 빠진 개헌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공론화 과정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권력구조 개편, 핵심 의제로 부상
제왕적 대통령제 완화와 권력 분산은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강하게 제기된 의제였다. 책임총리제 도입, 국회 양원제 도입 등 권력 견제 장치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단순한 헌법 전문 개정이 아닌 실질적 권력구조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특히 권력 집중 구조가 정치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권력 분산을 통해 협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도적 요구가 분명해졌다.
장영수 교수는 “형식적 개헌이 아닌 권력구조를 바꾸는 실질적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절차적 정당성 없는 개헌은 또 다른 갈등”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개헌의 ‘내용’ 못지않게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충분한 국민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되는 개헌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였다. 시민 참여 확대와 숙의 민주주의 기반 확보가 필수 조건으로 제시됐다.
개헌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될 때만 개헌의 결과가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양이현경 상임대표는 “권한 분산과 기본권 확대가 빠진 개헌은 시대 요구를 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채완 변호사는 “단계적 개헌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 전면 개헌을 위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헌조 상임공동대표는 “개헌과 선거를 분리해 충분한 국민적 논의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사회적 계약이다”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이갑산 회장은 “개헌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과정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선거 일정에 맞춘 끼워넣기식 개헌은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친 개헌만이 사회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개헌을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국민적 합의의 결과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이날 토론회의 핵심 메시지로 남았다.
이어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의 시기가 아니라 개헌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개헌은 또 다른 분열의 출발점이 될 뿐”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